지난 10일, 대한민국의 제 19대 대통령이 탄생했다.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로 그 어느 때보다 정권교체의 열망이 높았던 이번 대선의 승자는, 정경유착과 재벌 특혜, 각종 부정부패와 비리 등 ‘적폐청산’을 내세운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지난 수십년 간 대선 때마다 수많은 후보들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그러나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재벌 개혁, 과연 이번에는 가능할까.

2주 연속으로 방송되는 KBS 2TV ‘추적 60분-재벌과 비자금’ 2부작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뿌리 뽑아야할 ‘적폐’ 그 첫 번째, 일부 ‘재벌’의 폐해를 정면으로 겨냥한다.

1편. 임원들은 왜 회장님을 고발했나

지난 3월 3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영장실질심사로 서초동 일대가 떠들썩하던 시각, 같은 장소에서는 약탈경제반대행동을 비롯한 4개 시민단체가 담철곤 오리온 그룹 회장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뒤이어 지난 4월 13일 오리온 전직 임직원 5명이 담철곤 회장의 횡령, 비자금, 탈세 등에 대한 12개의 의혹을 담은 탄원서를 추가로 제출했다. 퇴직 임원들이 평생을 몸바쳐온 회사를 향해 화살을 겨눈 이유는 무엇일까.

■ 사라진 명작, 또다시 회장님이 수상하다

사진 제공 : KBS

회사 연수원에 전시돼있던 수억 원대의 예술품이, 몇 달 뒤 모조품으로 돌아왔다면? 영화 속의 한 장면이 아니다. 국내 굴지의 제과기업 오리온에서 일어난 일이다. 모조품으로 지목된 작품은, 마리아 퍼게이(Maria Pergay)의 ‘트리플 테이블(Triple tier flat-surfaced table)’로, 시가 2억 5천만 원에 달한다.

그런데 사라진 작품은 이뿐만이 아니다. 회사비용으로 임대한 ‘장 뒤뷔페(Jean Dubuffet)’의 ‘무제(Untitled)’ 역시 어느날 갑자기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는데. 제작진이 만난 전직 임직원들은 명작들을 빼돌린 범인으로 다름 아닌 담철곤 현 오리온 그룹 회장을 지목했다. 수십년간 회장 자택에서 일했다는 전직 직원과, 실제 작품을 반출하는 과정에 참여한 인물 등 목격자들을 통해 작품의 행방을 추적해본다.

“저만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니라 연수원에 있는 사람들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아요. 이 작품이 가짜라는 걸” -전 오리온 그룹 직원

“댁에선가 연락을 받았어요. 그걸(모조품) 제작하고 싶다던가, 아마 그래서 우리가 갔을 거예요. 제작하는 사람들한테 연락해서 진품을 가져왔으니까 그걸 보고 제작할 수 있느냐 이런 걸 물었더니 (모조품 제작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래서 뭐 ‘만들어봐라’ 그랬죠” -해당 미술품 운반자

■ 회장님의 비밀지갑

사진 제공 : KBS

담철곤 회장은 이미 지난 2011년, 회삿돈으로 산 수십억 원대의 명화들을 자신의 사택에 걸어 놓는가 하면 임원 급여로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 회삿돈 3백여억 원을 횡령, 유용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 집행유예 기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비슷한 의혹에 휘말린 것.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오리온 임직원들로 하여금 경조사비, 접대비 등의 명목으로 허위전표를 작성해, 회삿돈을 횡령해왔다는 것.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담회장이 15억 원 상당의 수입 명품 시계를 구매하면서 수억 원대의 관세와 특별소비세를 면하기 위해 대리 구매자를 이용했다는 이른바 ‘명품시계 세관 프리패스’ 의혹도 제기됐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통장 두 개를 만듭니다. 예를 들어 월 급여가 1천4백만 원인데 2/3는 본인 통장 계좌로 넣어주고요. 나머지 5백만 원 정도는 오리온 CFO가 관리하는 통장으로 급여를 두 군데로 쏘는 겁니다. 같은 날. 임원 급여를 사주용으로, 별도로 비자금 조성을 한 거죠” -전 오리온 그룹 부장

■ 자매의 난- ‘아이팩’의 소유주는 누구인가

사진 제공 : KBS

지난 2013년, 부도 직전 자회사 기업어음(CP) 등을 불완전 판매해 4만여 명의 투자자들에게 1조 7천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피해를 입힌 ‘동양그룹 사태’. 그 공범 중 하나인, 이혜경 전 동양그룹 부회장은 최근 제부인 담철곤 회장을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오리온 그룹에 포장지를 납품하는 업체, ‘아이팩’의 소유권을 되찾아 동양그룹 사태 피해자들에게 변제를 하겠다는 것. 이른바 ‘자매의 난’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이 전 부회장은 고 이양구 전 회장으로부터 상속받은 아이팩' 주식을 담 회장이 가로챘다고 주장하고, 담 회장은 이미 1988년에 자신이 아이팩을 직접 인수했다고 주장하며 팽팽히 맞서는 상황. ‘일감 몰아주기’ 수법으로 일찌감치 ‘재벌 일가의 사금고’ 역할을 했던 ‘아이팩’은 과거 담회장에게 수백억 원대의 배당금을 선사했던 알짜배기 기업이다.

‘추적 60분’은 전직 계열사 사장 및 임원들과, 당시 오리온 그룹의 실질적인 경영을 맡았던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의 옥중 서면 인터뷰를 통해 실제 소유주는 누구인지 추적해본다.

아이팩을 둘러싼 재산 분쟁을 지켜보며 가장 속이 타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지난 4년간, 총수 일가들의 은닉 재산을 찾아 발로 뛰어온 동양 사태 금융사기 피해자들. 전재산을 송두리째 잃고 여전히 힘든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는다.

“당시 (담철곤은) 자금 형성의 여유가 없었고 돈이 있다 하더라도 그 당시에 자기 위치를 봐가지고 그렇게 해나갈 수가 없었어요” -전 동양제과 사장

“아이팩을 담철곤이 본인의 자금으로 인수하였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당시 담철곤은 29세로 아마도 상무(또는 전무) 정도였으며, 담철곤이 기업을 인수할만한 위치나 경력이 되지 않았습니다.”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의 옥중 서신

KBS 2TV ‘추적 60분’은 24일 밤 11시 10분에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