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나 연극 혹은 영화 제작 현장에서 일해본 사람이라면, 우는 연기가 배우에게는 제일 쉽다는 것을 안다. 무명의 3류 여배우 조차도, "울어봐'라고 한마디 주문만 하면 불과 수초내에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장애인 연기, 똘아이 연기, 깡패 연기, 우는 연기 등등 설정이 분명한 역할은 솔직히 기회만 주어지면 어지간한 배우라면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급의 연기를 해낸다.

연기자에게 가장 힘든 배역은, 별다른 스토리 전개나 극적 사건도 없이, 허무하고 쓸쓸한 내면을 스크린 위에 펼쳐보이는 연기이다. 감독의 내공이 대단해야 함은 두말하면 잔소리.

현대인의 허무와 상실감을 테마로 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사실 영화용으로는 프로듀서들이 선호할 작품이 아니다. 비상업적인 아트 필름이면서 원작료는 비싸고 내공 9단의 감독과 연기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바꾸어서 말하면, 제작자 입장에서는 유명하지만 피곤한 인간들과 작업해서 수익도 남겨야 하는, 뭐 그런 과정이 된다.

하지만 바로 그런 과정을 통해서 좋은 작품이 나왔을 때의 희열은 제작자와 관객이 함께 공유하게 되고, 참여했던 감독과 배우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훈장'이 주어진다.

요시다 요의 '하나레이 베이'는 바로 그런 작품이다.

많은 일본 영화에서 별로 기억에도 남지 않는 조연으로 등장하던 '요시다 요'의 연기 내공이 좋은 제작진과 만나 제대로 발현되었다. 그러니 '안보면 너만 손해'이다.